은행 일 보기, 장애인 소비자에겐 여전히 '높은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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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소연 작성일19-04-01 10:47 조회10,42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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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구·ATM 접근성 크게 낮아…앱 활용도 어려운 상황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장애인 금융소비자에게 은행업무는 걸림돌 투성이다. 계좌를 트는 과정에서부터 은행 영업점이나 ATM서비스를 이용하는 것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 스마트폰 대중화로 최근 비중이 높아진 비대면채널에서도 장애인 금융소비자들은 외면받는다.
정부와 은행권의 노력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은행의 공공성을 감안할 때 장애인을 위한 제도개선 속도가 더디다는 게 문제다. "은행권에선 의무사항은 고쳐도 권고사항은 그냥 둔다"는 장애인단체의 불만도 그래서 나온다. 법적·제도적 정비보다도 장애인 금융소비자를 향한 은행권의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세계파이낸스는 장애인들이 금융생활에서 겪는 불편함과 이에 대한 개선 방안을 짚어봤다.
◇통장개설·ATM이용…장애인 소비자에겐 '큰 도전'
지난 2007년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차법)'은 장애인에 대한 불리한 대우를 금지하는 게 골자다. 특히 이 법 17조는 금융상품 및 서비스 제공에 있어서의 차별을 금지한다. 금융상품나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자는 금전대출, 신용카드 발급, 보험가입 등 각종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때 정당한 사유없이 장애인에게 제한·배제·분리·거부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장애인 금융소비자들은 금융서비스를 이용하는 데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는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지난해 진행한 장애인 금융이용 차별 개선을 위한 연구 용역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1192명 중 금융회사 창구나 자동화기기 등을 이용하면서 불편함을 느꼈다는 응답비중은 전체의 41.1%나 됐다. 높은 경사로나 좁은 통로 또는 수동문 등으로 은행 출입이 불편했다는 응답이 관련 응답의 30.2%를 차지했다. 창구의 규격이 맞지 않아 불편함을 겪었다는 응답도 22.1%로 높았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장애인 금융소비자들이 은행 이용단계에서 접근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걸 방증한다. 한국척수장애인협회 관계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은 은행 영업점 출입문이 지나치게 무거워 문을 밀고 당길 때 불편함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경사로가 은행 출입문 바로 앞까지 이어진 곳은 은행 문 앞에 휠체어를 고정할 평지를 두는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 금융소비자들이 영업점을 찾을 때 겪는 애로사항은 이 뿐만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장애인의 금융이용관련 민원을 보면 통장개설단계에서 거절 당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지적장애, 뇌병변장애, 시각장애 등의 경우 보이스피싱, 대포통장 전환 방지 등의 이유로 통장개설이 되지 않았다. 자필서명의 어려움, 의사소통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거절 당한 사례도 접수됐다. 활동보조인과 동행시 법정대리인으로 판결을 받아와야 개설이 가능하다며 발급을 거절당하기도 한다. 이용석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실장은 "은행 직원이 지적장애인에 대한 통장발급 절차를 숙지하지 못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도표=오현승 기자 |
은행 창구의 기능을 보조하는 ATM 역시 장애인 금융소비자에게 친화적이지 않다. 지난 2010년 한국은행 금융정보화추진위원회가 '장애인을 위한 CD/ATM 표준'을 제정한 후 장애인이 사용가능한 ATM은 점점 보급률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4월 기준 전체 ATM의 88%인 3만 8485대가 장애인 사용가능 ATM이다. 하지만 평상시 은행직원이 상주하지 않는 점외코너가 문제다. 이 곳에선 장애인 사용가능 ATM설치 비중이 고작 34%에 불과했다.
지체장애인들은 ATM에 접근자체가 쉽지 않은 데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은 휠체어 앞부분과 ATM 하단부가 충돌해 ATM 이용이 불편하다고 하소연한다. 청각장애인들은 카드반환, 기계오작동 등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신고할 수단이 음성전화 밖에 없어 불편을 겪는다. ATM 지폐인출구가 지나치게 빨리 닫히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 비대면 거래도 소외…ATM·카드 발급 등은 개선 작업 진행
영업점과 같은 오프라인에서뿐만 아니라 모바일과 같은 비대면채널의 장애인 접근성을 높이는 것 역시 시급한 과제다. 일례로 지체장애 및 뇌병변장애의 경우 온라인 금융서비스를 가입하려할 때 의무적으로 은행 창구방문을 요구받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전자금융업자와 금융회사의 전자지급서비스 일평균 이용건수는 2259만 건, 이용금액은 4688억 원에 이른다. 1년 새 각각 11.5%, 36.5%나 증가했을 정도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비대면채널에서는 장애유형에 따라 겪는 불편함이 더 크다. 청각장애인의 경우 일정금액 이상 송금 시 더해지는 본인확인 과정에서 화상수화통역이나 음성지원을 이용할 수 없다. 설령 수화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낮은 화질 탓에 실질적인 상담기능은 하지 못한다. 청각장애인에게 음성으로만 인증하게 하면 금융서비스 자체가 불가능하다. 시각장애인들은 점자보안카드를 제대로 발급받지 못했다는 민원도 제기한다.
실제로 인권위가 접수한 온라인 서비스 관련 민원 61건을 살펴보면, 수화 및 영상전화 서비스가 미흡하다는 답변은 34건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보안 OPT 및 카드가 불편하다는 민원도 18건이나 됐다. 또 다른 장애인단체 관계자는 "시각장애인들이 음성으로 안내를 받는 과정에서 시간 초과로 거래가 중단되지 않도록 은행의 업무프로세스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헀다.
정부와 은행권의 노력이 없는 건 아니다. 금융위원회는 오는 7월 중엔 자필서명이 불가능한 지체장애인 등에게 통장 및 신용카드를 녹취나 화상통화와 같은 대체수단을 통해 서명 없이 발급하도록 하겠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이는 시각장애인과 뇌병변장애인 등이 직접 신용카드 신청서를 작성하지 않아 카드 발급이 거절되는 경우를 막기 위한 것이다. 금융위는 또 연내 시각장애인용 지폐 구분도구를 제작해 배포한다. 지폐 종류별로 가로 길이가 6mm씩 차이가 나는 점을 반영해 시각장애인들이 보다 쉽게 지폐를 구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체장애인의 사용 편의를 높이고자 ATM의 구조도 바꾼다. 금융위는 연내 휠체어가 ATM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ATM 하단부에 무릎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20cm에서 45cm로 넓히고 좌우 공간 역시 종전 70cm에서 80cm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더해 시각장애인의 ATM이용에 따른 불편을 덜고자 숫자키패드 위치 및 순서배열, 카드·통장 입출구 위치, 이어폰 꽂이 위치도 통일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하지만 이같은 ATM 표준안을 지키지 않을 때 이를 제재할 조항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에 대해 조남훈 금융위 금융소비자과 사무관은 "휠체어 장애인분들의 지속적으로 개선을 요구해온 점과 관련, 한국은행이 장애인 ATM 표준안 개정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표준안이 법적 강제는 없지만 대부분의 은행들이 준수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홍현근 한국지체장애인협회 편의증진국장은 "은행권 ATM과 달리 밴(VAN)사가 운영하는 ATM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점은 법 정비가 필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홍 국장은 이어 "그간 건의해온 내용들이 이번(지난 20일)에 금융위가 발표한 내용에 어느 정도 반영이 된 만큼 이를 실천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훈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연구원은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음성이나 스마트폰 앱(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지폐 권종을 구분하는 기기를 보급하거나, 모바일접근성 지침을 의무화해하는 식으로 금융애로사항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금융위원회 |
◇법보다 인식개선이 더 시급…은행 공공성 높여야
장애인단체에선 작은 제도 개선만으로도 장애인 금융소비자들의 접근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일례로 은행 대출의 경우 표준양식을 제정하는 것만으로도 시각장애인의 금융불편을 줄일 수 있다.
김훈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연구원은 "은행 직원이 활동보조인을 보증인으로 간주해 전맹인 시각장애인이 대출을 거절당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시각장애인들은 은행 대출을 받을 때 통일된 절차가 없다는 점에서 큰 어려움을 겪는 만큼 당국에서 은행 공통의 표준안을 만들거나 은행 스스로 대출준비서류에 대한 메뉴얼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비대면거래도 마찬가지다. 현행 장차법 시행령 14조 2항 1엔 '누구든지 신체적·기술적 여건과 관계없이 웹사이트를 통해 원하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해당 조항은 장애인을 대상으로 편의수단을 제공해야 하는 전자정보 범위에 웹사이트만을 규정하고 있다. 최근 사용 비중이 크게 늘고 있는 모바일 앱은 배제돼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문제점을 바로잡고자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당 조항의 '웹사이트'라는 단어를 '웹사이트 등'으로 바꾸는 시행정 개정작업을 지난해 1월 보건복지부에 전달했다. 이렇게 되면 모바일 앱에서도 장애인의 이용편의성이 높아지게 된다. 하지만 1년 넘도록 바뀐 게 없다. 김상희 의원실의 김명신 보좌관은 기자와 통화하면서 "복지부에 시행령 개정작업이 되지 않은 사유를 확인해달라고 오늘(26일) 요청했다"고 말했다.
법과 제도를 정비하기에 앞서 은행권 종사자들의 장애인 금융소비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게 문제해결의 첫걸음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를 위해 은행 본점 차원에서 장애인 금융소비자에 대한 대응메뉴얼 숙지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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