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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시대 ‘무인화’, 차별의 새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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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소연 작성일21-11-23 15:12 조회4,4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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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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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각장애인 이민석씨가 지난 12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무인 아이스크림 매장에서 계산을 하기 위해 무인단말기를 이용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무인매장 빠르게 늘고 있지만 취약층 정보 접근성 고려 안 해

 “결제 방식을 선택하세요.”

 무인단말기(키오스크)의 음성에 시각장애인 이민석씨(33)는 “어디, 어디” 하며 화면을 손으로 더듬었지만 ‘카드’를 누르지 못했다. 이후 카드 투입구를 찾는 것도, 영수증을 받을지 말지 선택하는 것도 옆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왼쪽이 카드’라고, ‘카드 투입구는 오른쪽 상단에 있다’고 한마디만 해줘도 좋을 텐데요. 아니면 손으로 만져지는 압력식 버튼을 몇 개만 설치해서 누를 수 있게 해도 좋고요.”

 


 지난 12일 경향신문 기자와 함께 서울 영등포구의 한 무인 아이스크림 매장을 찾은 이씨는 ‘혼자 무인매장에 갈 수 없다’는 예상된 결론에 이르자 씁쓸함에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이씨는 7~8개의 냉동고에서 원하는 아이스크림을 찾는 것부터 애를 먹었다. 그가 손으로 만져 찾을 수 있다고 자신한 ‘스크류바’를 반갑게 들어올렸지만 그건 ‘조크박’(조스바+스크류바+수박바)이었다. 이후로도 ‘메로나’ 대신 ‘말랑카우바’를, ‘비비빅’ 대신 ‘빙빙바’를 잘못 골랐다. 같은 아이스크림도 여러 가지 맛이 있으니 촉감에 의지해 고르는 건 쉽지 않았다.
 그사이 초등학교 2학년이라는 한 남자아이가 아이스크림 4개를 고르고, 능숙하게 무인단말기 안내대로 가 계산을 한 후 가게를 떠났다. 그 아이는 “집 가까이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생겨서 행복하다”며 “무인매장이라 편하다”고 했다.

 


 이씨는 아이가 계산할 때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더듬더듬 무인단말기를 찾아갔다. ‘바코드를 찍으라’는 음성안내가 나왔는데, 비장애인이라면 오른쪽 아래 바코드 찍는 곳을 쉽게 찾았겠지만 이씨는 단말기 여기저기를 만져서 한참 만에 찾을 수 있었다. 제품마다 바코드 위치도 제각각이었다. 아이스크림을 좌우, 앞뒤로 돌려가며 찍던 그는 “바코드 위치가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바코드가 찍히면 ‘띠’하고 효과음이 났지만 “얼마인지 알 수 없어서 답답하다”고도 했다. 자신이 시간을 끄는 바람에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생기는지도 의식했다.


 이씨는 2000년대 인기게임인 스타크래프트의 시각장애인 게이머로 활동할 정도로 새로운 기기를 익히는 데 적극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새로 나온 게 있으면 내가 먼저 익히고 다른 시각장애인분들께 알려드리면서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는 그다. 하지만 “무인단말기의 ‘터치’ 방식이 일반화되면서 지금은 아예 도전을 할 수가 없게 됐다”며 “이런 현실이 사람을 더 무력하고, 위축되게 만든다”고 말했다.

 


 미국 아마존이 2018 년에 무인매장 ‘아마존 고’를 선보인 후 매장 무인화는 세계적인 대세가 되고 있다. 한국은 모바일·카드 결제가 대중화된 데다 인건비 상승,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비대면 선호가 겹치면서 무인매장이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업종도 초기의 무인 아이스크림 매장, 빨래방을 넘어 편의점, 카페, 사진관, 휴대전화 판매점, 반려동물 용품점 등으로 다양해졌다. 특히 젊은층은 비대면 결제를 편하게 여겨서 젊은층 비중이 높은 신도시에선 새로 연 매장 다수가 무인으로 운영된다.
 기업들은 비용 절감과 최첨단 기술이 결합된 혁신으로 무인매장을 홍보하고, 정부는 인구 밀도가 낮은 지방이나 골목 상권 매장이 경쟁력을 유지하는 방편으로 ‘스마트’로 이름 붙인 무인매장을 장려하고 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은 무인매장 확대 소식에 걱정과 소외감이 앞선다. 불친절한 무인단말기에 도움받을 직원도 없는 매장은 그들에게 혁신이 아니라 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추가되는 경험이다.
 한국 사회는 은행 현금인출기(ATM)를 보급할 때 이미 장애인·노인을 충분히 배려치 못해 진통을 겪었다. 이씨는 “처음 ATM이 나왔을 때 가장 오른쪽 위에 있는 ‘1만원’ 버튼 위치를 외워서 만원씩만 뽑을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ATM에서 시각장애인이 이어폰을 꽂고 개인정보 노출 우려 없이 돈을 인출하는 정도까진 개선됐다.

 

 그런데 최근 무인매장이 확산되면서 다시 원점이다. 평소 장애인·노인을 위해 봉사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홍보하는 기업들도 그들이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도록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ATM 사례를 제도화해야 할 정부와 국회도 제때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아이디어는 많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16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한 학술회의에서는 시각장애인이 스마트폰으로 무인단말기를 원격 조작하는 방안, 무인매장에 ‘도움 창구’를 둬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게 하는 방안, 무인단말기에 자동응답시스템(ARS) 기능을 탑재하는 방안 등이 제시됐다.
 문제는 무인매장 확산 속도에 비해 대응이 늦다는 점이다. 정부는 2019년부터 무인단말기 정보접근성 개선 예산을 책정했다. 올해 예산은 무인단말기와 웹접근성 등을 합쳐 16억원에 불과하다. 이 예산으로 매년 실태조사를 하고 휴게소나 공항 같은 공공시설 무인단말기에 점자 키패드를 다는 등의 활동을 한다.

 


 공공기관이 단말기를 주문할 때 장애인·노인의 접근성이 개선된 제품으로 우선 구매토록 하는 제도는 지난해 법이 통과됐지만 시행령 마련 등으로 인해 올해 6월에야 시행됐다. 접근성이 개선된 제품을 민간으로 확대할 근거가 될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안은 지난달 29일에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무인단말기를 접근·이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는 법안이다. 향후 시행을 위해선 시행령 등 규정을 구체화해야 한다. 민간 업체들은 접근성 개선에 대한 연구를 할 역량이 부족하다고 호소하니 정부가 표준을 마련하고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보급해야 하는데, 이제 내년 예산에 반영하려 추진하는 단계다.


과기정통부,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 등으로 분산된 정보접근성 업무를 총괄할 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엔 지난 1월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로 국무총리 산하 디지털포용위원회를 신설하는 디지털포용법안이 발의돼 본격적인 논의를 기다리고 있다.



출처:

https://www.khan.co.kr/economy/market-trend/article/202107190600005#csidx7b52697694fb11a8b2ccd107f4f27e1 onebyone.gif?action_id=7b52697694fb11a8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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